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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 위크와 J
Day+054 @스튜디오에서 쓰다
면허증을 번역하자
오늘은 J와 만나기로 약속을 한 날이다. 시애틀 레스토랑 위크라고 4/2~4/19까지 50개 정도의 레스토랑이 런치 $18, 디너 $30에 코스를 제공한다. 일종의 한국에서 현대카드 고메위크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여튼 예전에 들은 적은 있었는데 가야지, 가봐야지 하다가 그냥 넘길뻔한 것을 마침 며칠전 J가 연락하여 함께 가보기로 했다. 나간 김에 점심도 먹고, 근처 카페에서 같이 작업하다가 저녁도 먹기로 했다.
첫 번째 식당에서 11:45에 만나기로 했으므로, 나는 다운타운에 먼저 가서 계속 미뤄두었던 면허증 번역 공증을 할 계획이었다. 한국 면허증을 워싱턴주 면허증으로 바꾸려면 한글로 된 면허증을 영어로 번역을 해서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전날 이것저것 일하고 그러느라 늦게 잠을 잤지만 그래도 8시에 일어났는데, 침대에 누워있다보니 조금 느즈막히 나왔다. 10시 반 정도? 영사관은 다운타운에 있는데, 운좋게 오는 버스를 탔고, 11시가 다 되어서 영사관에 도착했다. 절차는 간단했다. 영사관 컴퓨터에서 면허증 공증 양식을 다운받아서, 한글을 영어로 모두 바꾸고, 영사에게 가서 여권, 면허증 원본, 번역한 영문 면허증, 수수료 $4를 내고 확인을 받으면 된다. 처음 시도한 건 몇 가지 틀린 부분이 있어서 수정을 요청받았는데, 영사는 엄청나게 불친절했으나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일을 처리해주었다. 새삼 불친절하고 엄청나게 빠른 한국 행정을 다시 만난 느낌… 어쩐지 그립기도 하고.
여튼 11:30에 일이 끝났으므로, 2km나 떨어진 식당에 걸어갈 순 없었고 우버를 불렀다. 정확하게 45분에 식당에 도착했다.
인스타 갬성 느낌의 브런치 카페
마치 인스타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은 엄청나게 하얗고 예쁜 카페였다. 이름은 The London Plane.
들어가는 입구
플라워 카페이기도 해서 내부에 꽃도 많고, 베이커리도 있고, 2층도 있고, 와인도 있고…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매우 갬성갬성한 것이었다. 이 곳은 J가 친구에게 추천받은 곳이라고.
플라워 카페라서 입구 쪽에 이렇게 꽃이 가득
내부 전경1
내부 전경2
내부 전경3
일단은 J가 도착하지 않아서 먼저 카페에 들어가서 여유롭게 메뉴판을 살펴보고 있었다. 5분쯤 후에 도착한 J와 $18짜리 런치 코스를 주문했다.
메뉴와 테이블 세팅
레스토랑 위크 2코스 메뉴
신기한 건 커피도 시켰는데, 되게 커피가 있을 것 같은 곳인데 에스프레소 머신이 없어서 에스프레소 음료는 안 되고 그냥 브루드 커피만 된다고. 일단은 그걸 한 잔 시켰다. 그리고 카페를 둘러보며 이것저것 구경했다.
Instagramable하다
아기자기한 엽서도 팔고 있고
베이커리를 따로 파는 곳에 카라멜 사탕도
베이커리도 먹어보고 싶었지만 이날은 패스
2층에서 내려다본 풍경
2층에서 내려다본 베이커리 쪽
인스타 각 아닙니까?
곧 나온 메뉴… 이름은 Spring Vegetables와 soft egg, wipped feta cheese를 함께 서브하는 차가운 샐러드였다. 다른 하나는 Plane Bread와 labneh(무슨 그릭요거트스러운 페이스트인듯), preserved lemon이 같이 나오는 것. 사워도우브래드 (큰) 한조각과 그릭요거트 페이스트(?)가 나왔는데 어쨌든 건강하고 맛있는 맛이었음.
신선하고 건강한 맛
두 번째 코스는 English Peas, toast, ricotta, mint, rhubarb라고 되어있는 걸 시켰는데 요리재료들을 다 모르겠어서 J와 함께 열심히 서칭서칭을 하였다. rhubarb는 무슨 풀때기인 것 같았음. 여튼 리코타치즈, 콩, 민트, 풀때기를 올린 토스트가 나왔다.
Peas, toast, ricotta, mint, rhubarb
J는 신기한 메뉴인 poached albacore, nicoise style이라는 걸 주문했는데, albacore가 찾아보니 다랑어?과의 생선이라고 했는데 막상 먹어보니 왠지 닭고기 같은 맛인 것…
poached albacore, nicoise style
사실 그래서 정확히 잘은 모르겠다. 여튼 맛은 있었고, 카페가 너무 예뻐서 좋았음.
나는 원래 인생에 좀 소소하게 이상한 일들을 많이 겪는데… 이날도 점원이 Bill을 잘못 갖다줘서 계산을 잘못할뻔한 일이 있었다. 결제가 다 됐는데 결국 취소하고 연신 사과하며 다시 갖다줌. J는 지금까지 자기 인생에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바람이 휘몰아치는 와중 정처없는 발걸음
일단은 카페에 커피를 마시러 이동하기로 했다. 근처에 Storyville이라는 유명한 카페가 있어서 가보기로 했는데… 막상 가니까 자리가 너무 좁은 것. 그 카페는 왜 이렇게 작은 걸까… 결국 커피를 시키는 와중에 자리가 꽉차버렸고, 거기에 앉을 수도, 설 수도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커피를 집어들고 밖으로 나섰다.
Cortado 예쁘고 맛있다 고소했어
J가 Amazon Sphere가 공공 개방되어서, 그곳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 슬쩍 서치했는데, 무슨 예약을 해야한다고 하고 그 예약은 이미 가득차버린 것으로 판명되어 일단 포기. 결국 지난주에 Macy’s에서 샀던 옷 하나가 사이즈가 커서 바꿔야했기 때문에 커피를 가지고 Macy’s에 들르기로 했다. 그 전에 DoL을 지나게 되어서, 면허증이나 바꿀까?했는데, 웬일, 1시간 30분은 기다려야 한다고… 결국 그냥 바로 Macy’s로 가기로 했다. 근데 가는 길에 시애틀 공립 도서관(Seattle Public Library)를 지나치게 되었는데, J가 가본 적 없냐고 물어 가본 적 없다고 했다. 그래서 이 기회에 어차피 지나치는 것 한 번 들어가보기로. 휙 들어가서 한 번 살펴보았다.
시애틀 퍼블릭 라이브러리 외관
시애틀 도서관은 생각 이상으로 정~말 좋았다. 이런 도서관이 있으니까 UW에 iSchool도 생기고, information science도 인기가 있는 게 아닐까? 우리나라에도 이 정도의 도서관이 시가지 중심부에 있으면 사람들이 많이 갈 것도 같은데… 요즘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도 할 일이 없어하고, 이것저것 문화생활에 대한 욕구도 커졌으니까.
암튼 도서관이 고루하지 않고 신식으로 지어져서 뭔가 느낌이 좋았다. 공부할 곳도 책 읽을 곳도 많아서 멋져보이고 부러웠다. 대략 10층까지 올라가볼 수 있는데, 10층까지 올라가면 전망이 매우 좋다.
You are at the highest viewpoint
밖으로 살짝 보이는 시내 풍경
천장과 벽면은 빗살무늬(?)처럼 되어있어 마치 공항을 연상케한다. 하남 스타필드에 갔을 때도 이런 식의 유리+빗살무늬 철골(?)을 배치해놔서 공항같다고 생각했는데, 여기도 비슷하다.
공항 같은 시애틀 도서관 내부
마치 탑승 대기장 같은 느낌
평화로운 도서관
공공 도서관이 이렇게 좋다니
아무튼 그렇게 조금 둘러보고 나와서, Macy’s에 가서 옷을 성공적(?)으로 바꾸고, 디저트를 먹으러 근처의 Anchorhead Coffee에 갔다. 어제도 갔던 곳이지만, 매우 좋았고, 커피도 맛있고, 어제 못 먹은 와플을 먹고 싶어서.
베이직 와플!
간단하게 와플 1개와 얼그레이 2잔을 시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원래는 일을 했어야 했는데…
얼그레이와 와플과 수다
J도 다른 친구를 도와서 할 일을 해야한다고 분명히 이야기했으나, 한두시간 이야기하다보니 시간이 어느덧 훌쩍 흘러버렸다(…) 그리고 바야흐로 6시 예약지로 향할 때가 되었다.
5W 1H와 Not Filter
가는 길목에서 솔직하게 사는 것,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 것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J가 살면서 점점 ‘육하원칙’ 중 하나가 중요해지는 것 같고, 그것이 어떤 정체성이 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 그러했다.
Who, When, What, Where, Why, How. 어떤 사람은 ‘Who’가 중요하다. 어떤 일을 하든, 어디에 있든, 누구와 함께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 있다. 또, Where, 어디가 중요한 사람도 있다. ‘미국’에서 살아야 한다든지, ‘한국’은 싫다든지 그런 사람들은 주변에서 많이 찾을 수 있다. 이를테면 ‘서울대’가 중요한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What이 중요한 사람도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혹은 How가 중요한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이유가 중요한 사람들도 있다. 항상 ’Why’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대의명분이라고 할까.
물론 이러한 중요도가 하나 빼고 나머지 다 무시해! 이런 건 아닐 것이다. 경향성이라는 게 있을 수 있다 정도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거고. 심지어 같은 사람이라 상황에 따라서 중요도가 바뀔 수도 있지. 하지만 전반적인 가치관에서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J가 최근에 친한 친구와 이야기를 하닥 이걸 깨달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친구들이랑 다같이 스키장에 가는 약속이 추진되었는데, J는 스키타는 걸 엄청 좋아하진 않지만, 그 친구들을 좋아하니까 가려고 했는데, 한 친구가 ‘난 스키타는 걸 안 좋아해서 안 가려구’라고 말을 하는 걸 듣고, 아 뭔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가 다르구나,를 생각해냈다고 한다. 그러니까 J는 Who가 중요한 사람이고, 그 친구는 What이 중요한 사람인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는 뭘까? 아마도 나는 Why라고 처음에는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니까 그냥 Why가 아니라 Why Not이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나의 대부분의 결정은 ‘A가 싫어서 B’ ‘A가 안되니까 B’ ‘A를 하지 않기 위해서 B’ 이런 식이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뭐 위의 스키장 같은 상황이면 ‘어떤 맘에 안 드는 친구가 끼면 안 감’ 뭐 이런 것이지. 하여튼 나는 별로 뭔가 적극적으로 ‘어떤 이유’를 찾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에게 항상 ‘Why’가 궁금했다. 그래서 이런 연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네. 어쨌든 그러니까 나는 Why도 아니고 그냥 Not filter가 중요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모든 것에 Not을 씌워보는 그런 사람인거지.
이야기를 하다보니 주변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조금 생각해보게 됐다. 생각해보니 C오빠는 나와 사고체계가 같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오빠랑 얘기하는 게 편하고 매사 생각하는 것도 비슷한 것이었던 듯… 오빠도 Not filter가 어쩌면 나보다도 더 강한 사람이기도 하고. 보통 ‘현실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이런 사람들에 가까울 것도 같다. 그에 비해 T는 이상주의적인 측면이 있지. 그는 항상 이유와 대의가 중요하다. 그런 부분에서 우리는 차이가 있고, 어쩌면 그 차이가 우리를 더 견고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좀 더 생각해보자면 선생님은 What이 중요한 사람인 것 같고. 어떻게 누구와보다는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결국 ‘무엇’이 계속 바뀌어야 하고 흥미로워야 하는 분인 것 같다. 여튼 이게 오늘의 가장 하이라이트. 나는 무엇이고, 주위 사람들은 어떤가? 계속 탐색해봐야지.
레스토랑 위크의 꽃, 디너
One Table에서 Rating이 높은 곳 중 시내에 있는, Heartwood Provisions에 예약을 해두었다. 6시에 맞춰 도착을 했다. 분위기는 약간 어둡고, 캐주얼 다이닝이지만 뭔가 부티나는 사람들이 많다는 느낌.
대략 이런 분위기 약간 어둑어둑하다
당연히 레스토랑 위크에 맞게 $33 코스를 시키고, $16에 Wine Flight라는 세 잔의 와인을 주는 메뉴도 함께 시켰다.
테이블 세팅
메뉴
첫 번째 코스로는 차가운 콩스프와 Crispy Walleye(명태…라고 나온다)라는 걸 시켰는데, 맛있었다. 그런데 콩스프 세 스푼째 떠먹다가 머리카락 발견… 결국 새로운 dish를 다시 갖다줘서 먹었다. J는 이런 일도 잘 안 일어난다고(…) 하지만 나는 뭐 주문 바뀌거나, 주문 안되거나, 뭐 그런일이 허다하기 때문에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예전에도 아웃백에서 머리카락 나온 적 있고, 재작년 샌프란 피자집에서도 피자가 잘못 나온 적이 있다. 뭐 이외에도 셀 수 없는 일들이 있음.
와인 플라이트로 나온 세 잔의 와인
차가운 콩스프. 짭짤한 게 입맛을 당긴다
대구(?) 같은 생선을 바싹 튀긴 것. 아주 맛있었다
두 번째 코스는 버섯 리조또와 해물 스튜. 굉장히 많이 먹었는데, 생각보다 J가 입이 짧은 편이라 뭔가 나도 모르게 많이 먹어버린 모양이다. 해물스튜는 굉장히 시원한 해물국(?) 같았음.
두 개의 메뉴, 비주얼은 그냥 그렇지만 맛은 좋았음!
세 번째는 카라멜 판나코타+아이스크림과 레몬파운드케이크+아이스크림. 이건 남김없이 싹싹 긁어서 잘 먹었다. 역시 디저트 너무 좋아…
최고 좋아하는 디저트 파트1
최고 좋아하는 디저트 파트2
이렇게 다 먹고 둘이서 택스포함 $94.98 나왔으니, 좋은 레스토랑에서 가성비 좋게 잘먹은 듯하다. 특히 내가 와인을 시켜서 가격이 좀 더 뛴 건데, 그렇지 않았다면 $40 언더에서 레스토랑 디너 코스를 먹은 셈이니… 아무튼 여기는 분위기나 맛이 괜찮아서 다음에 시간이나 돈이 허락한다면 다시 와보고 싶다.
오늘의 영수증: 스튜핏?
밖으로 나왔더니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서 리프트를 타고 유딕으로 돌아왔다. 벤모로 J와 오늘의 정산을 하고, T에게 편지를 썼다. 밤이 깊기 전에 너무 힘들어서 잠이 들어버렸다.